일본군에 괴멸 당한 조선 수군에게 남은 배는 12척 뿐
영화 명량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입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100년 이상 지속돼온 전국시대가 종료되고 통일이 막 된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외부로 눈을 돌렸고 우리나라를 거쳐 중국까지 침략을 할 계획을 세웠는데, 그 전쟁이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순신장군에 의해 패퇴한 일본군이 1597년 정유년에 다시 재침공하면서 정유대란이 시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 명량이 제작되었습니다.
이순신은 한산도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시기와 질투에 의해 1597년 정유재란때 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게 되고 수도인 한양에서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궤멸되다시피 한 상태였는데, 히데요시는 해적왕인 구루지마를 용병으로 고용해 전라도를 통해 한양까지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일본군 내부에서 조선의 이순신을 주의해야 한다는 내분이 있었지만 구루지마는 본인이 직접 이순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위기감을 느낀 선조는 어쩔수 없이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게 됩니다. 이순신이 다시 수군으로 복귀 후 전황을 살펴보니 일본군의 함선은 300척이 넘었지만 조선 수군의 배인 판옥선은 12척에 불과했습니다. 계속되는 패배로 조선 수군의 탈영은 계속되어 수군의 기강마저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이순신 장군 기강을 세우고 전략을 준비하다
이순신은 일본군과의 대전을 앞두고 해이해진 수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두려움을 없애고자 탈영병을 참수했습니다. 한편 이순신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 사전 답사차 미리 현장 답사를 했습니다. 그 사이에 무리한 전쟁을 수행하려는 이순신을 암살하기 위해 조선 수군이 오히려 자객을 보냈는데, 이때 하나 남은 거북선 마저 불에 타버리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출정식을 가지고 조선을 재침략하게 됩니다.조선 수군의 나머지 장군들은 도저히 승리할 방법이 없다고 반대합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배수의 진을 치고자 막사를 부래우고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요 죽을려고 하면 살것이다 라는 말로 전의를 불태우고 판옥선을 출정합니다.
미리 사전답사를 마친 울둘목으로 간 이순신은 일자진을 형성하고 일본군을 맞이하게 됩니다. 닻을 내리고 전투준비를 마친 이순신은 제일 앞서 나오는 일본군을 향해 화력을 집중합니다. 이순신이 울둘목을 해전의 장소로 삼은 이유는 빠른 조류때문이었는데, 일본군은 조선 수군의 대장선의 화포와 빠른 유속으로 서로 뒤엉키면서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물살이 바뀌게 되면서 이순신은 일본 수군과 백병전을 준비하면서 상황에 따라 알맞게 전술을 준비합니다. 일본 수군은 이순신을 집중적으로 노리게 됩니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량해전
이순신은 화포를 집중해 포위된 일본 수군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순신의 선전에 승리할 수 없다고 했던 조선의 다른 수군 장수들도 모여들어 같이 싸움을 하게 됩니다. 마침 시간이 오후로 넘어가면서 물살이 바뀌게 됩니다. 판옥선은 네모난배로 방향을 바꾸는게 쉽지만 일본배는 뽀죡하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울돌목의 회오리가 이는 바다 중간에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간 백병전이 다시 벌어지게 됩니다. 일본군의 용병 구루지마는 이순신의 배에서 쓰러집니다. 대장선은 백성들의 도움으로 회오리 바다에서 벗어나게 되고 다시 배들이 충돌하면서 백병전이 일어납니다. 드디어 일본군이 후퇴하면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명량해전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로 조선 수군의 12척과 일본군의 300척 이상의 해전사는 전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엄청난 전쟁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대한 세계 명장들의 반응
전세계에서 이순신 및 이순신이 치른 전쟁에 대해 존경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영국 해군중장 이었던 G. A. 발라드, 미국역사학자였던 토마스 브레너,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의 제독까지 명량대전 및 한산도 대첩을 한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언급했는데 살펴 보겠습니다.
- 영국 G.A.발라드 : 이순신 장군을 존재하게 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 미국 토마스브레너 : 이렇게 훌륭한 장군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
- 일본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 이순신 장군이 군신이라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 미국 UCLA 길버트 교수 : 히데요시의 범 아시아적 야망을 좌절시킨 인물
- 미군 연구소 발행 프로시딩즈 :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거둔 승리는 세계 해전 사상 가장 완벽한 승리였다.
- 미국 해군 역사가 조지 해거만 : 이순신 때문에 일본의 중국 침략은 약 300년동안 막혔다.
는 "이순신 장군을 존재하게 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라고 얘기 하였고, 미국 역사학자였던 토마스 브레너는 "이렇게 훌륭한 장군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총평
아무리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인 만큼 각색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가지로 보입니다.
첫번째는 조선의 뛰어난 명장이었던 이순신이 얼마 남지 않은 배로 일본 수군을 물리쳐 일명 국뽕을 자극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무너져가던 조선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백성들과의 신뢰를 회복 해서 리더십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화배우인 최민식의 연기가 이순신의 이런 인간적인 내면과 카리스마를 잘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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